저는 그래도 아빠가 여전히 자랑스럽습니다. 아빠가 우리 보기에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한 적은 없으니까요. 저도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수업시간에만요. 수업시간에 어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아직 두뇌가 말랑말랑한 학생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3학년이고 당장 내년에 선거에 참여할 유권자이지만 아직도 선생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정치 이슈를 가지고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는 것은 좋은 정치·사회 수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치 이슈에 대한 교사의 일방적인 견해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때까지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서는 모두 저런 원칙을 지켜주셨고,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라고 다를 건 없습니다. 솔직히 대부분 학생들은 전교조니 뭐니 이런 것도 잘 모릅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일 뿐이지요. 전교조란 이유로 학생들을 ‘선동’하는 분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빠는 ‘교사’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아빠는 교사이기 전에 한 개인이고,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빠가 한 개인으로서 특정한 정당을 후원하고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것이 범죄라면,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정치 교과서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국민은 정권을 잡고 있는 정당과 견해가 같을 때만 정치적 자유를 가진다고요.
토론의 기본 원칙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정당한 근거를 들어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토론에 정답은 없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도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뭐, 그래도 그 주관적인 기준을 잣대로 아빠를 범죄자로 만들어버리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 그냥 저는 범죄자 아빠의 딸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 그들만의 ‘정답’에서 벗어나 범죄자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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